'7 DAYS' 의 느와르풍 프리퀄, '아르고의 선택' 체험기
버프 스튜디오의 신작 ‘아르고의 선택’ 이 지난 주 출시되었습니다. ‘용사는 진행중’, ‘마이 오아시스' 등의 게임으로 이름을 알린 버프 스튜디오는 2018년부터 스토리 중심의 게임을 출시하기 시작했고, ‘아르고의 선택’ 은 그 시작이었던 ‘7 DAYS(이하 세븐데이즈)’ 의 후속작입니다.
'7 DAYS' 에서의 아르고가 이렇게 바뀌었다.
‘세븐데이즈’ 는 버프 스튜디오의 첫 스토리 게임이었지만, 굉장히 훌륭한 게임이었고 매우 즐겁게 플레이한 게임이었습니다. 독특하고 매력있는 일러스트와 미스터리하고 신비한 느낌의 세계관, 그리고 많은 비밀과 저마다 다른 능력을 숨기고 있는 인물들까지. 다회차를 통해 여러겹의 스토리를 탐구하는 게임으로서 흥미를 돋구는 요소가 많았고 당시로서는 참신한 플레이 방식, 그리고 반전이 있는 결말까지 그 해 플레이했던 모바일 게임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게임이었죠.
그처럼 매우 만족했던 게임의 후속 이야기라고 하니, 큰 기대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아르고의 선택’ 은 전작 ‘세븐데이즈’ 와 동일한 게임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메신저 대화 UI로 인물들의 대사, 그리고 상황을 보여주며, 이는 연극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듯 합니다. 이제는 ‘세븐데이즈’ 뿐만 아니라 다른 모바일 게임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방식이고, 정해진 이야기를 따라가며 여러 선택을 가해 변화하는 스토리를 여러 회차를 거쳐 하나씩 발견해나가는 게임입니다.
아예 대놓고 틀린 선택지를 고르면, 다시 고를 기회를 주기도 한다.
아르고가 Styx 라는 바에 들어서 바텐더와 타로점을 치며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진행 됩니다. Styx 바의 장면을 제외한 게임 내 등장하는 모든 이야기는 아르고의 회상이며, 타로 카드는 각각 그 카드에 얽힌 인물을 보여주고,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뒤 본격적인 아르고의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세븐데이즈’ 는 사후세계 또는 생과 사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였으며, ‘아르고의 선택’ 은 그 전의 이야기를 다루는 프리퀄입니다. 사실 스토리가 게임 그 자체이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는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까지도 이야기하기는 좀 꺼리게 됩니다. 다만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세븐데이즈’ 를 플레이 한 후 넘어왔을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 어떤 인물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예상할 수 있죠.
이처럼 다회차를 전제로 디자인 된 게임인 만큼, 첫번째 엔딩까지는 별다른 느낌이 오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세븐데이즈’ 를 플레이하고 나서 큰 기대를 가지고 ‘아르고의 선택’ 을 플레이 한 후, 첫 엔딩을 특정 루트로 타지 않았다면 “뭐지?” 라는 생각이 들만큼 말이죠.
그러나 2회차부터 새로운 루트가 개방되고, 숨겨졌던 인물을 하나씩 해금하면서 각 인물의 신뢰도 같은 바로미터를 신경쓰게 되고 이를 어떻게 채우고, 또 어떤 선택지를 골랐느냐에 따라 또다른 새 루트가 개방됩니다. 총 6개의 엔딩이 준비되어 있고, 이 엔딩을 모두 여는 것이 최종적으로 이 게임의 목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핵심은 아르고와 함께 얽혀있는 3인의 인물입니다. 제프, 기드, 도펠 이 3인을 만났던 아르고의 과거 이야기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큰 변화가 생기며, Styx 에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구성, 그리고 특정 에피소드가 개방되거나 생략되기도 합니다.
중요한 선택지는 다양하면서도, 미리 플레이어에게 주의를 준다.
이런 스토리 게임에서의 재미는 결국 이런 변수, 그리고 선택지가 얼마나 맛깔난가에 있습니다. 저는 엔딩 3개를 열 때까지 플레이 했는데, 과연 어느 지점이 가장 큰 변수이고, 내가 원하는 엔딩(추측)으로 가려면 어떻게 선택을 하고 누굴 죽이고 살려야할까? 이런 고민을 한 뒤에 그걸 실행해서 새로운 비밀을 여는 그런 재미를 분명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말은 즉 이 게임이 스토리 중심의 다회차 게임으로서 핵심을 잘 갖추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물론 풀프라이스 콘솔 게임이 아닌 F2P 모바일 게임이기 때문에 볼륨 면에서 엄청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어느정도 좋은 깊이감을 느낄 수 있는 볼륨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븐데이즈’ 를 플레이했던 사람이라면 아르고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며, 단지 그가 과거에 어떤 행동을 저질렀는지, 그가 ‘세븐데이즈’ 에 오기까지 무슨 일이 정확히 있었는지 하는 그런 디테일을 보기 위해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목적이 클 것입니다. 즉 이 게임의 플레이 단계는 크게 세단계로 나뉩니다. 1. 일단 어떤 게임인지 익혀나가는 테스트 플레이(1회차) 2. ‘세븐데이즈’ 와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플레이(2회차 이후) 3. 그리고 남은 업적과 엔딩, 그리고 아르고와 연관된 숨겨진 이야기를 찾기 위한 플레이(‘세븐데이즈’ 연결 엔딩을 찾은 이후) 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2번과 3번 플레이 단계에서 만족도가 높았고 재미있었습니다. 스포일러 인물이 등장하는 단계까지 해금했을 때 뭔가 드디어 이게임의 비밀을 파헤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이후엔 다른 기존 등장인물의 결말을 바꾸어가면서 플레이하고, 또 새로운 엔딩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름부터 전개 내내 '선택' 을 강조하는 이 게임은, 여러 선택지들이 잘 조율 된 느낌입니다. 제가 이런 내용임을 예상하고 골랐는데 알고보니 반대로 흘러가는 애매모호한 의미의 선택지도 없고, 대체로 무엇을 골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물론, 어떤 선택지는 내가 뭘 고르던 같은 흐름으로 가기도 하지만, 큰 변화가 생길 선택지 전에는 아르고가 미리 신중해야 한다고 밑밥을 깔고 가기 때문에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플레이가 흘러가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세븐데이즈’ 를 통해 이미 우리는 아르고가 어떤 사람인지 대강 짐작하고 있습니다. 비정한 뒷골목의 청부살인업자지만 그와 상반되는 많은 면을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사람이죠. 그 아르고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게임입니다.
기드의 캐릭터 자체가 방정맞은 건 이해하지만, 느와르치고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
그러나, 이 게임의 모든 면이 성에 차는 것은 아닙니다. 딱 두가지 부분에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언급할 부분은 이 게임이 표방한 느낌, ‘느와르’ 로서의 강렬한 느낌이 좀 부족하다는 겁니다. 이는 대사의 무게감, 대사의 품질, 더불어 일러스트의 사용이 다소 아쉽다는 점에서 기인합니다. 느와르를 표방하는 점에서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대사의 느낌과 구성, 그리고 중간 중간 보여지는 일러스트를 통한 전달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최소한 제 취향에는 이 게임의 몇몇 대사들은 너무 가볍습니다. 장난스럽거나, 느끼하거나, 상황과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산통 깨는' 대사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사실 음성이 없이 텍스트로만 의미를 넘어서서 어떤 말의 느낌까지 전달하는건 쉽지 않은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게임들이 더빙을 하지 않더라도 대화 컷씬을 집어넣고 다소 과장된 대사를 사용하는 것이며, 인물의 표정이라도 구현하고자 하는게 그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철저히 메신저 느낌을 내고 있고, 그래서 우리가 카카오톡으로 대화할 때 종종 느낌이 잘못 전달되는 것처럼 여기서도 동일한 문제가 생깁니다. 또한 아르고 자체보다는 아르고 주변 인물들의 대사 비중이 높다보니 그들의 캐릭터성에 작품 전체의 분위기가 휘둘리는 느낌이 있습니다. 특히 기드, 그리고 제프가 그런 느낌이 강합니다. 전반적으로 느와르풍을 잘 이용하고 있지만 진성 느와르라고 하기엔 몇몇 부분은 조금 애매하지 않나 싶습니다.
두번째로 저는 과금 모델에 대해 조금 불만이 있습니다. 특히나 이는 전작인 ‘세븐데이즈’ 의 경우에는 유료 판매를 하였기 때문에 비교되어 부각되는 면도 있고요. 기본적으로 게임을 진행하면서 아르고의 대사 선택지를 고를 때 티켓이 소비되고, 이 티켓을 광고 시청 또는 유료 구입으로 채우는 방식입니다.
물론 모바일 게임 특성상 광고 위주의 BM으로 나갈 수 밖에 없음은 이해하지만, 그와 더불어 다소 가격이 높더라도 이런 티켓 방식에 구애받지 않는 유료 구입 선택지가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입니다. 이 게임처럼 다회차 요소가 강한 게임에서 이런 티켓 방식은 모든 선택지를 열어보고 시험해보고 모든 콜렉션을 채우기 전에 이 티켓의 압박 때문에 게임을 접게 되는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프리페이드 보다는 이런 티켓식 BM 이 더 마음에 드는 플레이어도 있을테지만, 기존의 BM을 저해하지 않는 액수에서 프리페이드 선택지를 넣었다면 더 많은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런 단점들을 지적하기는 했지만, 게임의 핵심 플레이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부차적인 요소라고 봅니다. 다행히도 게임의 핵심적인 부분들은 칭찬할 부분이 많습니다.
인물, 엔딩, 업적, 갤러리 등이 플레이 욕구의 원천.
가장 먼저 언급할 것은 역시 다회차에서 발생하는 여러 선택지 분기입니다. 기본적으로 제프, 기드, 도펠 이 셋의 생과 사를 결정할 수 있으면서도 단순히 이들을 모두 살리고 모두 신뢰도를 높인다고 해서 내가 바라는 엔딩으로 향하지 않습니다. 면밀하게 따져보고 이 캐릭터와 함께 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이고, 또 이 캐릭터와 저 캐릭터가 엮이는 분기에서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또다른 선택지가 발생하기도 하죠.
또 2회차부터 나오는 인물과 그 에피소드는 게임의 후반부를 아예 바꾸어버리기도 하며, 엔딩을 결정하는 방식도, 차곡차곡 누적되어 오는 선택지(캐릭터의 생사 분기, 신뢰도 같은 바로미터)와 최종적으로 직면하게 되는 최종 결정 선택지 모두 게임 내에 잘 녹아있고, 둘은 어느 한쪽을 강제적으로 원천 차단하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여러 갈래를 탐색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스포일러 인물이 나오는 엔딩에 도달하기 위한 조건, 그리고 그 엔딩의 끝의 내용을 곰곰히 되새겨보면 결국 아르고라는 인물의 현 상황과 이야기가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깨닫게 되지요.
'세븐데이즈' 라는 토대 위에 올려진 '아르고의 선택'
어쨌거나 ‘아르고의 선택’ 은 ‘세븐데이즈’ 의 프리퀄이라는 스토리적 제약이 있기 때문에,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되고, 어디로 이어질지는 다분히 명확합니다. 그러므로 플레이어가 삼을 첫번째 목표는 바로 그 ‘세븐데이즈’ 로 이어지는 스토리 루트를 찾아내는데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그런 이유로 플레이 했으니까요.
그러나 단순히 ‘세븐데이즈’ 와의 연결점을 찾는데서 끝나지 않고, ‘아르고의 선택’ 만의 이야기를 맛볼 수 있다는 부분도 좋습니다. 그저 전작의 후광을 업은 속편이 아니라 자체적인 이야기를 시도하고 아르고 라는 캐릭터, 그리고 그 주변 인물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구현하고자 했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정리하자면, ‘세븐데이즈’ 를 플레이했다면 꼭 플레이해야 하는 좋은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역으로 ‘아르고의 선택’ 을 플레이하고자 한다면 ‘세븐데이즈’ 가 꼭 선행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버프 스튜디오가 다양한 톤의 이야기를 시도한 부분은 높게 평가합니다. 비록 완전히 거칠고 비정한 느와르의 분위기를 완벽히 구현하기는 어려웠지만 아르고라는 캐릭터를 적절히 살려내고 잘 이용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버프 스튜디오는 애착이 많이 가는 개발사입니다. 지난 인터뷰에서 밝혔듯 ‘모바일 게임부터 AAA급 게임까지 만들어 내는 개발사’ 라는 비전이 마음에 들고, 그동안 출시했던 게임들, ‘세븐데이즈’, ‘언더월드 오피스’, ‘히어로 아닙니다’ 등의 게임이 딱 들어맞는 볼륨과 개성을 가지고 좋은 감각을 보여준 게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장르의 이야기를 시도하여 플레이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